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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의 유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짓는 건축가의 길

유이화 건축가(장식미술과 97졸,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소장)

아버지의 생애를 기념해 제주에 설립한 ‘유동룡미술관’, 2023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 수상

수풍석 박물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자연의 형상을 그대로 끌어안은 듯한 제주의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모두 MZ 세대가 즐겨 찾는 소위 ‘SNS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지은 지 20년을 훌쩍 넘겼거나 그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건축물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세계적 건축가 故 이타미 준의 작품들이다. 재일교포 이타미 준으로 알려졌으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름을 끝까지 간직하려 했던 유동룡. 그의 생애를 기념해 딸 유이화 건축가가 제주에 설립한 ‘유동룡미술관’이 2023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유이화 건축가에게 ‘유동룡미술관’ 건립은 치열한 고민과 질문 끝에 다다른 결론이었다.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이타미 준이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딸의 주관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타미 준이 왜 알려져야 하고, 그의 삶이 어떤 의미와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대답이 필요했다. 서울과 제주에서 원로, 중견, 신진 건축가들을 모시고 수없이 의견을 구하며 들었던 결론은 늘 같았다. 이 시대에 본인만의 확고한 건축 철학을 가지고 꾸준히 자기의 세계를 지켜나간 건축가의 본이 필요하다는 것. 비단 건축가뿐 아니라 작가든 화가든 그 누구든, 이타미 준의 삶의 여정과 태도를 통해 각자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지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파인드 오리지널리티(Find Originality)’, 유동룡미술관의 슬로건에 담긴 뜻이다.

Q ⸻
아버지를 이어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재일교포인 아버지가 한국말이 서투르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통역을 위해 현장을 따라다녔다. 천상 예술가였던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어서 서운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았고, 나 또한 아버지처럼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건축 현장에서 말씀하시는 것들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묘한 흥분이 느껴졌고 현장에 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음 현장이 기대됐다. 앞으로 내가 갈 길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너무 고생스러운 길이라 딸이 그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셨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작가성’을 확장하고 싶은 열망과 갈급함이 커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으로 건축 유학을 떠났고, 3년간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 911 테러로 귀국했다. 일을 하면서 그제야 거꾸로 알게됐다. 나에게는 유일해서 전부로 보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굉장히 특이하고 흔치 않은 분이었다는 걸.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상업적인 논리와 그때그때의 흐름에 따라서 가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쉽지 않은 싸움을 해 오셨기 때문에 이만큼의 명성을 얻고도 돈을 벌지 못했다. 그렇게 유명한 세계적인 이타미 준이었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다.

Q ⸻
이타미 준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게 불편하진 않은지

30대 때는 아주 작은 거라도 이타미 준이 아닌 나 유이화의 이름으로 퍼블리싱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 이름으로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가 ‘포도플라자(2005)’였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리노베이션 됐다. 건축주도 흡족해했고,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선정됐지만 사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이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창피하고 후회가 남는다. 이제는 30대 때의 생각에서 많이 벗어났다. 내가 이타미 준의 딸이지 누구 딸이겠는가. 지금은 오히려 너무 좋다. 물질적인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는 아니지만, 정신적 유산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금수저라고 생각한다.

Q ⸻
자신만의 건축 철학이 있다면

아버지가 남긴 유명한 말씀이 있다. 50이 넘으니 건축이 재미있고, 60이 넘으니 건축이 뭔지 알 것 같았는데 70이 넘으니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뭔지 알 것 같다고. 나는 건축을 한 지 22년 차이지만 아직도 걸음마를 떼는 시기인 것 같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축 철학이 베이스에 있지만 건축은 시대성을 반영해야 하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호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나의 라이프타임보다 훨씬 더 오래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거기에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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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룡미술관 (사진: 김용관)

  

재일교포 이타미 준으로 알려졌으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름을 끝까지 간직하려 했던 유동룡. 그의 생애를 기념해 딸 유이화 건축가가 제주에 설립한 ‘유동룡미술관’. 서울과 제주에서 원로, 중견, 신진 건축가들을 모시고 수없이 의견을 구하며 들었던 결론은 늘 같았다. 이 시대에 본인만의 확고한 건축 철학을 가지고 꾸준히 자기의 세계를 지켜나간 건축가의 본이 필요하다는 것. (사진: 김용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축 철학이 베이스에 있지만 건축은 시대성을 반영해야 하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호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나의 라이프타임보다 훨씬 더 오래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거기에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담아야 한다.”

Q ⸻
최근 DDP에서 열린 ‘2023 서울디자인’의 총괄 큐레이터로서, 제로 웨이스트 파빌리온을 선보였다. 지금 건축이 마주한 시대성이란 무엇일까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해 고민이 매우 많다. 전 세계 탄소 배출 총량의 30% 가까이를 건축이 차지하고 있다. 시멘트 건축이 그만큼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다. 새로운 건축뿐 아니라 오래된 건물의 철거 과정에서도 산업 폐기물이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이러한 인식을 하고 나서부터는 어떻게 하면 탄소 배출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건축을 할 것인지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목조 건물에 주목하고 있다. 목재 자체가 탄소 저장량이 많다. 나무를 베는 것이 자연을 훼손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 오래된 나무는 산소 배출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베어주고 새롭게 심고 자라나게 하는 과정이 탄소중립에 큰 도움이 된다. ‘2023 서울디자인’에서 산업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특히 내가 설계한 제로 웨이스트 파빌리온은 폐기물 0%에 도전해 페어가 끝난 후 100%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Q ⸻
‘이화’라는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 학창 시절의 추억이 있다면

아버지는 딸이 이화여대에 가길 희망하셔서 내 이름을 ‘이화’로 지으셨다.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니었지만 그 말씀만큼은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이대에 공과대학이 설립된 게 1995년인데 내가 93학번이다.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어야 했는데, 입학할 당시만 해도 건축과가 없어서 장식미술과 실내환경디자인전공에 입학했다. 매 학기 첫 수업에서는 교수님들이 꼭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셨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는 “너는 이화여대 오라고 부모님이 이화라고 지어주셨니?” 하고 물으셨다. 그 질문 받는 게 민망해서 개강을 하면 첫 수업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항상 목련 필 때쯤이 되면 이화 캠퍼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목련이 핀 본관의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Q ⸻
건축계에서 여성 건축가의 입지는 어떠한지, 또한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는지 궁금하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던 이화에서의 시간은 건축가로서 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자 7명 중 내가 유일한 여성 건축가였다. 그런데 같은 날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학생 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한 8명의 수상자는 단 한 명의 남자도 없이 모두 여성이었다. 앞으로는 건축계를 여성들이 많이 이끌어 갈 것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모인 건축 현장을 이끄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과도 같다. 여성이 강점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는 전공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교양과목 수업을 들으며 지식과 생각의 폭을 넓히고, 세상과 교감하고 교류하려는 노력을 통해 따뜻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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