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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여정’을 담아내다
수라 갯벌의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생명의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새만금간척사업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 ‘수라’와 그 갯벌을 지키기 위해 20년째 고군분투해 온 시민들의 기억과 기록을 모티브로 한 영화 <수라>가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식 개봉을 하기도 전에 오로지 관객들의 힘으로 이미 30회의 시사회가 열렸고, 관객들이 주도한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에 힘입어 6월 21일 개봉일에는 전국 159개의 극장에서 동시 상영되는 기록을 세웠다.
약자 중의 약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을 대변해 카메라를 들 힘이 남아있는 그날까지 영화를 만들겠다 다짐했다는 황윤 감독.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들에 관한 <작별>, 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어느날 그 길에서>,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돼지들의 삶을 다룬 <잡식가족의 딜레마>, 그리고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수라>까지.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일관되게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영화계에서 유례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난 2014년 개인적 이유로 군산에 이주한 황윤 감독이 우연한 기회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을 만나게 되면서 수라 갯벌과 그곳의 생명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찾아왔다. “작가가 이야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작가를 찾아온다”는, 그가 좋아하는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말처럼 말이다.
30년이 넘게 진행되어 온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습지 생태계가 파괴되고 철새들은 쉴 곳을 잃었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어민들은 생업을 잃었다. 사람이고 철새고 피해자만 있을 뿐 그 누구도 혜택을 본 이가 없다. 7년 전 군산으로 이주한 황윤 감독이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만나게 되면서 수라 갯벌과 그곳의 생명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찾아왔다.
| Q ⸻ | 영화 <수라>가 만들어진 계기가 궁금하다 |
새만금간척사업은 오래 전에 끝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군산에 갯벌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과 10년이 넘도록 갯벌을 지키기 위해 물새를 조사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 오동필 단장은 미심쩍어하는 나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정기 모니터링에 초대해 주었는데, 시민들을 처음 만났던 날이 이 영화의 첫 촬영일이 되었다. 그날 수라 갯벌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150여 마리를 보았다. 갯벌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었다니, 게다가 그 귀한 저어새들이 살고 있다니, 마치 죽은 줄만 알았던 주인공이 살아 돌아온 영화 속 반전처럼 신선한 충격이었다. 2006년 대법원 판결로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강행된 이후 갯벌을 지키려던 사람들이 모두 체념하고 떠나갔는데, 포기하지 않고 갯벌의 생명들을 조사하고 기록해 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고,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 군산, 인천, 순천, 목포 전국 각지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이 생업에 종사하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고 자비를 들여서 20년의 기록을 쌓아왔던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될 거라고 직감했다. | |
| Q ⸻ | 10만 마리 도요새의 군무를 회상하는 장면이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가 되나요?”라는 오 단장의 질문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 같다 |
‘기억’과 ‘기록’은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수라 갯벌과 옥구 염전에서 10만 마리 도요새가 보여준 환상적인 춤, 그 광경과 소리에 매혹됐던 기억을 오 단장이 내게 전해줬다. 그가 느꼈을 경이로움과 그리움, 상실감이 나를 압도했다. 영화를 만드는 데 걸린 7년의 시간과 숱한 어려움을 겪어낸 것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이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생명을 눈으로 본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기억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기록이다. 이들은 갯벌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수만 장의 사진과 5권의 보고서로 기록해 남겼다. 정부가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로 새만금간척사업과 새만금신공항을 밀어붙일 때, 시민들은 조사와 기록으로 맞서 싸워왔다. 갯벌이 아무런 보호가치가 없다고 정부가 거짓말을 할 때, 시민들은 수라 갯벌에서만 50종이 넘는 법정보호종을 찾아내 증거로 제시해 왔다. 시민들의 무기는 망원경과 카메라였다. <수라>는 아름다운 것들을 잊지 못해 포기할 수 없는 시민들이, 기록하는 행위로 저항하며 끝내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여정을 담고 있다. | |
수라 갯벌에서 서식하는 쇠제비갈매기 새끼의 모습(위), 수라 갯벌에서 살아남은 멸종위기종 검은머리갈매기(아래) - 사진 출처: 영화 <수라>
| Q ⸻ | 저어새뿐 아니라 흰발농게, 쇠검은머리쑥새, 도요새가 영화 속에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촬영하며 마주친 아름다운 순간을 소개한다면 |
수없이 많았다. 영화 속 승준이 멸종위기종인 쇠검은머리쑥새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수없이 갯벌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새들은 주로 동틀 무렵에 울기 때문에, 새벽 4시에 수라 갯벌을 찾았는데 그때 월몰을 목격했다. 환상적인 분홍빛 달이 수라 갯벌에 지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포착해 영화의 첫 장면과 포스터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말라가는 갯벌 속에서도 10년을 버텨 살아낸 멸종위기종 흰발농게를 발견했을 때도 생명의 경이로운 의지를 느꼈고 꼭 지켜주고 싶었다. 도요새는 놀라운 장거리 여행자들이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출발해 한반도 갯벌에서 쉬었다가 러시아 툰드라, 알래스카까지 올라가 번식을 하고 다시 남쪽으로 날아가는 여정을 해마다 반복한다. 영화를 본 한 초등학생이 이런 소감을 남겼다. “도요새가 머나먼 여정을 날아가는 것을 보니까 우리도 도요새처럼 먼 길과 험한 길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제작 막바지에 너무 힘들 때 나도 도요새를 떠올리며 힘을 냈는데 어린이 관객이 이런 소감을 남기다니 너무 고맙고 기뻤다. 영화를 본 전국의 많은 관객들이 수라 갯벌로 찾아와서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 마음들이 끝내 수라를 지켜낼 거라 믿는다. | |
갯벌은 우주의 만유인력이 만드는 예술작품이다.
갯벌의 형상은 나무의 줄기와도 사람의 핏줄과도 같았다.
(사진 출처: 영화 <수라>)
| Q ⸻ | 생명에 대한 탁월한 감수성, 두려움 없는 도전과 용기가 느껴진다. 이화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 |
학교에 다닐 때는 영화보다는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전혀 다른 시대에 다른 언어로 쓰여진 작품이 100년 뒤 아시아의 한 여성을 울릴 수 있다는 데서 예술의 힘을 발견했다. 언니에게 잠수복을 물려받아 교내 스킨스쿠버 동아리 활동도 했다. 바닷속에 펼쳐진 광활한 세계에서 야생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그때의 경험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영화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한번은 장비가 고장난지도 모른 채 깊은 바다로 잠수를 했다가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함께 짝이 되어 잠수한 선배와 서로 의지하며 죽음을 헤쳐나왔던 그 경험으로 인해, 여성끼리 연대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이화에서 보낸 시간들로 인해 형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 |
| Q ⸻ |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된 계기가 있다면 |
대학을 졸업하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직했었는데, 재미가 없어서 1년 만에 그만뒀다. 우연히 영화제에 갔다가 이화 동문이신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보게 됐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음에도 한 번도 학교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는데,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중요한 역사를 배웠다는 게 놀라웠다. 그때,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약자들의 스피커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후 영화제에서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는 픽션 영화보다 훨씬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을 발견하며 매력에 빠졌다. | |
| Q ⸻ | 이화의 후배들, 그리고 이 세대의 청년들을 위해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어쩌면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이렇게 가면 안전할까, 실패하지 않을까? 이런 것을 너무 재단하고 예측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이 사회가 나에게 뭘 요구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근사한 일이라고 얘기한들 내 가슴이 뛰지 않으면 내 인생이라는 기차를 달리게 할 동력이 없는 거다. 남들이 언제까지고 나를 끌고갈 순 없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그것만 생각한다면 거기서부터 수많은 길이 열릴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 |
영화 <수라>는 48회 서울독립영화제 영화상과 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제59회 대종상영화제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지명됐다. 2023년 12월 현재 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돌파했으며, 해외상영추진단을 꾸려 곧 세계 곳곳에서도 <수라>를 상영할 예정이다.
“아무리 세상이 근사한 일이라고 얘기한들 |
“아무리 세상이 근사한 일이라고 얘기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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