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View
동심으로 세상을
다시 그리다
상상력과 꾸준함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온 아티스트
다리아 송(송지혜) 일러스트 작가
섬유예술 2009졸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익숙한 풍경을 스쳐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낸다. 다리아 송 작가는 현실과 환상, 기억과 상상력을 섬세하게 엮어 우리에게 조금 더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는 아티스트다. 이화 창립 140주년을 기념하는 키비주얼에도 그의 시선이 담겼다. 본관을 감싸고 있는 수만 송이 배꽃 사이에는 1886년 이화학당의 문을 처음 열었던 한 명의 학생을 상징하는 작은 꽃 한 송이가 숨어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다리아 송 작가. 그가 그려온 상상력의 원천과 이화에서 시작된 성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화에서의 시간은 시야를 넓히고 예술적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전공뿐만 아니라 학부 시절 접한
인문학과 여성학 수업이 저를 다시 깨어나게 해줬다고 생각해요.
이화에서의 시간은 시야를 넓히고
예술적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전공뿐만 아니라 학부 시절 접한
인문학과 여성학 수업이 저를 다시
깨어나게 해줬다고 생각해요.
이화 창립 140주년 기념 키비주얼을 그리셨는데, 소감이 어떤지요.
본관을 둘러싼 풍성한 꽃송이들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홀로 떨어져 있는 한 송이의 배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는 1886년 5월 31일 이화학당의 문을 처음으로 열었던 첫 번째 학생을 상징합니다. 한 명의 여학생으로 시작해 오늘날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한 이화의 140년 역사를 키비주얼에 담고자 했어요. 깊이 생각할수록 굉장히 뭉클한 일이고, 제가 이런 역사적인 공간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자료 조사를 위해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는데, 본관 건물 중심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유리창을 렌즈에 담는 순간 이곳이 제가 학창 시절 자주 찾았던 ‘애다 기도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어두운 다락방 안으로 따스한 위로의 빛을 내어주던 창문, 수많은 이화의 선배와 동기들이 남긴 눈물 어린 기도 수첩을 읽으며 위로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저에게 이화의 키비주얼 작업이 단순한 프로젝트를 넘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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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송 작가가 작업한 이화 창립 140주년 기념 키비주얼은 다양한 기념품에 적용되어 이화 구성원들에게 전달됐다.
전 세계의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는 영향력 있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현재의 모습이 있기까지 결정적인 순간을 꼽는다면요.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지만 이를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제게는 두 번의 행운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 출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 컬러링북 작가 층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제 책이 전 세계 26개국으로 수출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죠.
두 번째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D사의 성수 프로젝트 협업이었어요. 그런 큰 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꾸준히 SNS에 제 작품을 올린 덕분에 큰 기회가 온 것 같아요. 본사가 있는 유럽은 시차가 반대이기 때문에 밤에도 거의 자지 못하고 매 순간 긴장하면서 작업에 몰두했어요. 작가로서 늘 혼자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낸 경험은 저에게도 새로웠어요. 이후에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작업의 스펙트럼과 역량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일러스트 분야에서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배움이 현재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화에서의 시간은 시야를 넓히고 예술적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전공뿐만 아니라 학부 시절 접한 인문학과 여성학 수업이 저를 다시 깨어나게 해줬다고 생각해요.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또한 섬유예술 전공에서 깊이 있게 연구했던 염색, 직조, 자수 등의 기법들은 특유의 따뜻한 텍스처와 수작업 고유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소중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쌓아온 수공예적 내공이 있었기에, 현재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상업 아트워크를 진행할 때도 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었어요. 작가의 길이 좁기도 하고 부모님의 권유로 취업 문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추천서를 부탁드리기 위해 찾아 뵈었던 장연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저의 인생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그때 교수님께서는 “너는 직장 생활 속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4년 동안 지켜본 너는 오직 작업을 할 때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대학원에 진학해 작가로서의 터를 닦아라”라며 단호하게 길을 짚어주셨어요. 저를 정확히 꿰뚫어 보신 교수님의 지도 덕분에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 제게는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한 순간입니다.
‘동심’이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저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야 했을 때 제가 선택한 주제가 ‘동심’이었습니다. 당시 20대였음에도 이미 수많은 현상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그림을 그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대에는 해외 선교 봉사를 많이 다녔는데,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많이 봤죠. 아이들은 자신의 환경에서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순간의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게 바로 동심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은 관객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되 환상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색을 입히는 것을 좋아해요. 현재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추는 상업 일러스트 작업을 더 많이 하지만, 동심을 바탕으로 제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온 시간과 대학원에서 고생한 연구의 시간이 현재도 제 작업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는 것 같아요.
커리어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예술가로서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놓지 않는 꾸준함’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의 전환기마다 커리어의 단절을 우려하는 후배들의 고민에 저도 깊이 공감해요. 저 역시 출산 후 육아에 집중하느라 6개월 정도 작업을 중단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어요. 누가 저에게 작업을 의뢰한 것도 아닌데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SNS에 꾸준히 올렸어요. 그런 꾸준함이 지금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꾸준함이 가능했던 비결이 저에게는 바로 아이였어요. 더 좋은 부모, 더 멋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제 일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육아로 인한 삶의 변화는 커리어에 있어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키고 작품 속 세계를 한층 깊고 풍성하게 만드는 계기도 되어주는 것 같아요.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함을 믿고 묵묵히 걸어간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찾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현대미술은 관객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되 환상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색을 입히는 것을 좋아해요.
현대미술은 관객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되
환상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색을 입히는 것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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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된 컬리링북 「시간의 정원」, 「시간의 방」 시리즈는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도안으로 당시 국내에서 10만 부,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는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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