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View
AI 시대,
‘본래적인 삶’을 생각하다
획일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나다움’을 찾는 길,
『실존의 향기』로 건네는 삶의 철학
한충수 교수
인문과학대학 철학과
당신은 지금 자기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SNS를 확인하는 일상 속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 적은 없는가.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나?’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 걸까?’ 매월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유튜브를 시청하고, 똑같은 제품들이 전 세계를 누빈다. 우리는 비슷한 것을 소비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꿈을 꾼다. 그 거대한 획일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
철학과 한충수 교수가 펴낸 『실존의 향기』는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19세기 키르케고르부터 하이데거,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실존철학의 핵심을 12개의 챕터로 풀어낸 이 책은, 이화여대 학생들과의 철학 강의를 바탕으로 쓰여져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실존적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실존철학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실존철학은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와 함께 시작해 하이데거를 통해 깊이를 얻었고, 2차 세계대전 후 사르트르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철학의 핵심을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물은 본질, 즉 용도가 실존(존재)에 앞섭니다. 의자는 앉는 용도, 탁자는 물건을 올려놓는 용도로 만들어지죠.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먼저 세계 속에 태어나 존재한 뒤,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본질을 찾습니다. 그래서 실존철학은 사람의 주체성, 즉 사람이 자기 삶을 자유롭게 이루어 가는 주인임을 강조하는 철학입니다.
19세기 유럽은 2차 산업혁명으로 노동 분업과 대량 생산이 확산되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개성을 잃고 단순하고 비슷한 일을 하며,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사회적 분위기와 유행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획일화의 경향에 대한 저항으로 실존철학이 나타났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AI 기술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지금, 획일화의 압력은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그 압력에 저항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실존철학은 여전히 하나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존적 삶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 사회의 획일화 경향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 속에서 별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갑니다. 그 삶을 하이데거는 ‘비본래적인 삶’, 즉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삶이라고 부릅니다. 이와 달리 자기 자신답게 사는 삶은 ‘본래적인 삶’이라고 불립니다. 사회 속에서 영향을 받으며 살다가 문득 돌아보면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하지만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과 큰 노력이 꾸준히 필요하니까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미 현재의 비본래적인 삶도 매우 버겁고 무척 고달픕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힘들어 보이는 본래적인 삶을 살라고 권유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업은 본래적인 삶을 잘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묘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19세기 유럽은 2차 산업혁명으로 노동 분업과 대량 생산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개성을 잃고 획일화되는 경향이 나타났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실존철학이 나타났습니다.
19세기 유럽은 2차 산업혁명으로
노동 분업과 대량 생산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개성을 잃고 획일화되는 경향이 나타났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실존철학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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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충수 교수는 실존철학이 4차 산업혁명으로 어지러움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기에, 앞으로도 실존철학을 꾸준히 연구하고 그 성과를 책으로 나누고자 한다. 『실존의 향기』에 이어질 후속작으로 삶의 공허함을 주제로 한 『실존의 허기』, 죽음을 주제로 한 『실존의 생기』 등 방대한 실존철학의 세계를 주제별로 엮어 진정한 삶의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실존적으로, 본래적으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하이데거는 비본래적인 삶의 두 가지 특징을 인상 깊게 묘사합니다. 바로 ‘잡담’과 ‘호기심’입니다. 1927년에 출간된 후 거의 백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실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자극적인 뉴스가 있으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잡담을 나누면서, 정작 중요한 일이나 자기 자신에게는 덜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최근 제가 깊은 인상을 받은 표현으로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주의력의 경제’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허버트 사이먼은 “풍부한 정보가 빈곤한 주의력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쓸모없고 무의미한 정보가 훨씬 더 많아졌지만, 그 불필요한 정보도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됩니다. 그래서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쉽게 주의력을 상실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주의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사회에서의 낙오나 소외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실존철학자들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르트르는 개인의 선택이 인류 전체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팬데믹 때 1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감염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상상은 무거운 책임감과 불안감을 줍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불안이 바람직한 삶의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개성 있거나 독창적인 행동을 할 때 누구나 마음이 떨립니다. 안전한 행동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때의 작고 불편한 불안감부터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쓴 약을 먹는 것처럼, 불안을 본래적인 삶의 신호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연습을 통해 점점 익숙해지고, 더 큰 불안감도 견딜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비슷한 불안감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본래적으로 살아갈 때 사람은 실존적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라는 책 속의 문장처럼 교수님도 자기답게 살지 못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이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요?
저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저는 막연한 허무감과 무기력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당시 삶의 의미를 알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그때 제가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그 물음을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고민이 있으면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내심이 얇아졌기 때문이겠죠. 만약 제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고민을 오래 품고 살지 못했을 것이고,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도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비본래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 문제를 비로소 제대로 물을 수 있도록 천천히 자기 자신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도 살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고, 알지 못하는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여행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모험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때로는 헤맬 때 손을 잡아줄 친구들도 필요합니다.
『실존의 향기』 12개 챕터는 교수님이 진행하신 철학과 수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흥미로워했던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책은 12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번째 챕터 ‘실존의 기분’과 일곱 번째 챕터 ‘실존의 휴식’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학생들도 이 두 챕터를 좋아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철학은 영원한 것과 변함없는 것을 사유해 왔습니다. 인간을 탐구할 때도 일시적인 감정이나 기분보다는 변함없는 이성에 집중했죠. 하지만 실존철학은 불안이나 권태 같은 기분에 주목하고 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인식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기분이 드러내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얇다”고 말합니다. 기분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전해주는 통로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느끼는 우울이라는 기분이 실존적 삶의 신호라는 데서 자그마한 위로를 얻은 것 같습니다.
‘실존의 휴식’ 챕터에서는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인용합니다. 러셀은 약 90년 전에 이미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인류 전체의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통찰은 인공지능 기술로 대량 해고가 논의되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일부만 과도하게 일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 사회보다, 모두가 조금씩 덜 일하는 사회가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야 각자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갖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각과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본래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 문제를 비로소 제대로 물을 수 있도록 천천히 자기 자신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비본래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 문제를 비로소 제대로 물을 수 있도록
천천히 자기 자신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실존의 허기』와 『실존의 생기』를 시리즈로 발간하실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발간할 책들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실존철학은 저에게 기쁘게 전념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해주었고, 4차 산업혁명으로 어지러움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존철학을 꾸준히 연구하고 그 성과를 책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실존철학의 세계는 매우 넓어서 한 권으로 집대성하기보다 주제별로 작은 책을 여러 권 쓰려 합니다. 두 번째 책 『실존의 허기』는 삶의 공허함을 주제로 하며, 이번 겨울에 초고를 완성하고, 2026년 1학기에 강의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세 번째 책은 죽음을 주제로 한 『실존의 생기』입니다. 실존철학자들은 모두 죽음을 깊이 고민했고, 그 성찰을 통해 진정한 삶의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가능하다면 행복을 다룬 『실존의 온기』 등, 계속 쓰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한 권씩 천천히 써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학기에 ‘Think, Thank, Tank’라는 제목으로 채플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바탕으로 ‘생각함’이 곧 ‘감사함’이며, 특히 인간에게 주어진 생각의 능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감사이다, 진정한 감사를 위해서 그 의미를 기억하고 마음속에 ‘간직하기’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때 시간 제약으로 학생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첫째, 여러분이 이화동산에서 지내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삶의 의미에 대해서 진실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둘째, 그리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이제까지 여러분을 도와주신 모든 분께 따뜻한 감사를 표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그 생각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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