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초월’을 춤추는 뇌
뇌파로 읽는 무용수의 경지,
포스트휴먼을 향한 질문
고현정 교수 음악대학 무용과
2,000석 규모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8분간의 솔로를 마친 무용수의 머리에 뇌파 측정 장치가 씌워진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 무용수의 뇌파가 실시간으로 무대 위 스크린에 나타난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본다.
무대에서 춤추는 그 순간, 무용수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전두엽의 세타파(Theta)는 줄고
베타파(Beta)는 치솟는다. 알파파(Alpha)의 피크는 약간 빨라지고, 두정엽의 알파 수준은 눈에 띄게 감소한다.
의식이 맑고 집중이 높아진 ‘각성 상태’에서 관찰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검객으로 치면, 칼을 칼집에서 빼기 직전의 상태다. “저는 이 말이 무용수의 극한 집중과 의식의 통합이 만들어내는 고도의 내면 상태를 함축하는 훌륭한 비유라고 생각해요. 무용수가 무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정말 특별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리허설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에요. 저는 이러한 특별한 느낌이 몸에서 일어나는 건지, 마음인 건지, 뇌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무용과 고현정 교수의 『소금길』 공연은 18세기 계몽주의 발레부터 인류세의 위기, 뇌과학까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탐구의 영역을 확장하는 실험적인 무대였다. 예술과 첨단 뇌과학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인류세가 초래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예술의 역할을 사유하는 이 공연은 포스트휴먼의 담론과도 자연스럽게 접점을 형성한다.
긴장과 열정이 응축된 무용수의 ‘초월’ 상태, 뇌파 측정
무용수는 춤을 추는 동안 무대공간에 대한 인지, 다른 무용수와의 신체적 거리, 리듬 및 박자의 조율뿐만 아니라 복잡한 움직임 시퀀스를 이해하고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인지적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춤추는 무용수의 뇌는 신경과학 분야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는 연구 주제이다. 고현정 교수는 무용수의 인지 과정 중에서도 특히 ‘초월(transcendence)’이라 부르는 상태, 일상생활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즉 관객과의 상호관계, 일시성, 긴장, 열정이 응축된 ‘무대’라는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특별한 감정에 주목해 왔다. 『소금길』 실제 공연 상황에서 무용수의 뇌파 측정이라는 도전적인 시도를 한 데에는 무용수로서의 오랜 경험과 호기심이 배경이 되었다.
“이번 실험 결과는 표본 수와 연구 설계의 한계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무용수가 무대에서 경험하는 초집중 상태를 몸·마음·뇌의 관점에서 함께 생각하게 하는 탐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미래에 나아가야 할 탐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올곧은 탐구로 섬김과 나눔의 이화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저의 다짐을 그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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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길』 공연은 18세기 계몽주의 발레부터 인류세의 위기, 뇌과학까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며 탐구의 영역을 확장하는 실험적인 무대였다. 예술과 첨단 뇌과학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인류세가 초래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예술의 역할을 사유하는 이 공연은 포스트휴먼의 담론과도 자연스럽게 접점을 형성한다.
인문학적 사유와 과학적 탐구: ‘예술 작품 되기’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춤추다
고현정 교수는 과학기술과의 융합뿐 아니라, 인문학적 사유를 공연과 예술 교육의 중요한 토대로 삼았다. 국립발레단 현역 무용수 시절 무용수로서의 ‘앎’과 ‘몸 지식’에 대한 궁금증은 ‘체화(embodiment)’를 연구하게 이끌었고, 이는 오랜 연구를 통해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문학으로 확장되었다.
“저에게 예술은 세상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따라서 예술가는 다양한 삶의 가치를 이해해야 하며, 이는 과학뿐 아니라 철학과 인문학의 탐구를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과학은 주관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미적 판단의 주관성을 신경과학적 접근을 통해 탐구하는 신경미학처럼, 무용수의 내면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의식과 존재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루는 철학과,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사회와 문화를 통찰하는 인문학은 새로운 춤을 만드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소금길』 2막 ‘찰나의 반짝임과 인류세’는 인간중심적 사고가 초래한 생태계 교란을 발레 언어로 풀어낸 장면이다. 인류세, 기후위기, 멸종의 위기에 처한 생명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묻는 포스트휴먼 철학적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고현정 교수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일으킨 많은 문제들, 그리고 인간의 편리에 맞게 조작하여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 환경적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써 공존과 나눔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변화가 필요하며, 예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기술이 환경파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개발을 이끄는 원동력은 인간의 사고와 사회의 가치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예술 교육으로 이어진다. 고 교수는 인류세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예술 교육의 핵심 개념으로 ‘예술 작품 되기’를 제시한다. 이는 경쟁의 세계에서 한 명의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회적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한 확장된 예술 교육을 의미한다.
“예술 교육에서 지속가능성은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학습자 안에 이미 존재하는 윤리 의식을 깨우는 과정입니다. 무용을 매개로 함께 생각하고 만들고 나누는 경험을 통해, 미래 세대가 ‘살 가치가 있는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죠.”
| “ | 신경미학처럼, 무용수의 내면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의식과 존재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루는 철학과,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사회와 문화를 통찰하는 인문학은 새로운 춤을 만드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 ‘소금길’
레이너 윈의 동명 에세이 『소금길』은 벼랑 끝에 몰린 작가가 영국 해안을 따라 소금길을 걸으며 자연으로부터 위로와 희망을 얻는 이야기다. 고현정 교수에게 자연의 웅장함과 질서는 신앙의 깊이를 알게되는 통로이자, 자연과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해 주는 매개이다. 자연에서 긴 세월을 거친 후 탄생하는 소금 결정처럼, 앞으로 긴 여정이 될 춤에 대한 사유를 그려내는 데 ‘소금길’은 훌륭한 예술적 영감이 되었다.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정신을 통해 무한한 깊이와 가능성을 지닌 춤 연구라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자 하는 앞으로의 여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의 소금길은 또한 이화 학생들과 함께 걷는 길이기도 하다. 매 학기 점심시간에 진행하는 ‘오후의 발레 산책’은 클래식 발레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를 해설과 함께 소개하고, 학생들의 공연이 더해지는 프로그램이다. 앞으로는 관객이 직접 몸을 움직여보는 참여형 공연도 구상 중이다.
“춤은 너무나 조용했던 저를 웃음이 그치지 않는 성격으로 바꿔주었습니다. 저는 이화의 학생들이 춤을 통해 불안을 잊고 행복을 느끼며 풍요로운 삶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모든 이들이 춤추며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언제나 꿈꿉니다.”
고현정 교수는 무용수의 인지와 몸·마음·뇌의 관계를 신경과학적으로 탐구하며, 춤이 왜 우리 삶에 필요한지, 인지와 정서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규명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하고자 한다. 이와 동시에 예술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올곧은 가치를 바로세우는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묵묵히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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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 교수는 인류세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예술 교육의 핵심 개념으로 ‘예술작품 되기’를 제시한다. 이는 경쟁의 세계에서 한 명의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회적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한 확장된 예술 교육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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