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오래된 질문,
새로운 정의를 탐색하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세계가 되어가는 길’

인간은 현재의 자신보다 꿈꾸었던 이상의 방향으로 인간을 향상시키고자 하는가? 
인공지능과 눈부신 과학기술을 등에 업은 인간이 이전보다 향상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가? 인공지능에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는 동안에도 기후위기가 생존을 위협하며, 
기술 격차로 인한 새로운 불평등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과 6차 대멸종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지도 모른다.

로지 브라이도티
 (Rosi Braidotti) 교수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김애령 교수
이화인문과학원

세계적인 포스트휴먼 철학자, 위트레흐트대학 로지 브라이도티 교수는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니, 한 번이라도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있었던 적이 있는가? 로지 브라이도티 교수와 이화인문과학원 김애령 교수의 대화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자.


인간 이후의 인간, 기술과 결합해 진화한 인간에 대한 상상이 포스트휴먼 담론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분 교수님이 정의하는 포스트휴먼이란 무엇인가요?

브라이도티 제가 정의하는 포스트휴먼은 단순히 디지털이나 기술적 측면만을 이야기하는 ‘인간 이후의 기술적 존재’가 아닙니다. 포스트휴먼 정의에서 디지털 기술, 환경 위기, 사회경제적 격차라는 세 축의 수렴(convergence)이 핵심입니다. 이 세 가지 축은 저마다의 문제를 생산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 기술 하나만 부각되면서 포스트휴먼이 상투적인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유 없이 모두가 이 말을 쓰고 있어요. 제 논의의 또 다른 핵심은, 전통적 휴머니즘에서의 ‘인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합의된 적이 없고, 그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인간은 남성, 백인, 이성애, 유럽중심적 개념이며, 인간종의 우월성을 전제해 왔습니다. 여성과 소수자, 토착민은 배제되어 왔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보편적이고 고정된 관념을 거부하고, 처한 위치와 권력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우리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포스트휴먼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김애령 브라이도티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 가지만 더 보탠다면, 포스트휴먼은 인간을 비인간과 배타적으로 경계 지어온 전통적인 사유 방식의 전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서구 휴머니즘은 인간을 지구상의 유일한 ‘예외적 존재’로 이해하면서 인간 이외의 것들, 즉 기술적 존재자들, 비인간 동물, 환경 자원 등과 전적으로 분리된 주체로 이해해 왔습니다. 포스트휴먼 관점은 인간이 비인간 존재자들과 얽혀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직시하고, 그를 통해 인간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포스트휴먼은 단순히 디지털이나 기술적 측면만을 이야기하는 ‘인간 이후의 기술적 존재’가 아닙니다. 포스트휴먼 정의에서 디지털 기술, 환경 위기, 사회경제적 격차라는 세 축의 수렴이 핵심입니다. 이 세 가지 축은 저마다의 문제를 생산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로지 브라이도티 교수

인간과 비인간 존재자들 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 포스트휴먼의 주된 논의 중 하나로 보이는데, 이러한 경계에 대한 사유는 왜 필요한가요?

김애령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촉발하는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첫째, ‘인류세’의 생태위기를 야기한 주체인 인간은 자신의 생존이 다른 존재자들과 무관한 것처럼 상상하며 지상의 모든 것을 대상화하고 착취해왔어요. 인류의 생존은 다른 존재자들과의 얽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인공지능이나 생명공학 같은 첨단기술이 인간적 삶의 양식을 바꾸고,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인간에게 본질적이라고 믿어왔던 것들 – 사유, 언어능력, 탄생, 죽음 같은 것들의 의미를 전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인간은 인간 아닌 것과 분리된 채 지구 상의 ‘예외적 존재’로 자기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기술적 존재자들과 얽혀 만들어갈 세계를 상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기술적 존재자들과 얽힌 세계에 대해서라면, 요즘 어디서나 '특이점(Singularity)'을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발전으로 인간이 향상된 존재, 
어쩌면 영생을 누리게 될 거라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관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브라이도티 제가 말하는 포스트휴먼은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Singularity)’과 전혀 다르며, 이는 제가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저는 특이점을 실리콘밸리식 탄생 신화라고 부릅니다. 왜냐면 이것은 일종의 ‘원년(Year Zero)’ 선언이거든요. 인간 의식이 기술과 합쳐져 초지능으로 도약한다는 서사는 몸도, 지구도, 사회적 조건도 지워버린 탈신체적, 탈지구적 환상일 뿐입니다. 신체는 불완전하니 기계로 대체될 수 있고, 기술은 무한히 확장될 것이며, 지구가 위험하면 화성으로 갈 수 있다는 식의 사고는 몸, 지구, 관계, 취약성 같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가리웁니다. 사실 ‘특이점’이 완전히 새로운 생각은 아닙니다. 1950년대 예수회 신부 테야르 드 샤르댕의 ‘오메가 포인트’에서 왔죠. 하지만 샤르댕은 신체와 사유를 분리하지도 않았고, 기술의 도움으로 상호연결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인류의 집단적 사유 ‘누스피어(Noosphere)’를 강조했어요. ‘특이점’은 이 심오한 철학적 질문의 오역이 되어버렸죠. 지금의 ‘특이점’은 빅테크의 독재이며, 기술의 주된 응용처는 전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내버려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생사권력의 문제입니다.

인류에게 다른 서사, 다른 상상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김애령 교수님께서는 최근 저서 『애프터 해러웨이』를 통해 ‘다른 이야기 짓기’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김애령 포스트휴먼 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대멸종, 기후위기 등 지구적 생명들이 처한 ‘트러블’에 응답하려면, 세계를 망가뜨려온 기존의 나쁜 이야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나쁜 이야기란 인간이 만든 기술이 지구 상에서 인간이 벌여놓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허황된 믿음, 인간중심주의, 인간예외주의, 인간을 환경과 분리시키는 ‘경계 지워진 개체주의’ 같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를 극복할 ‘더 나은’ 이야기들로 그것을 대체해야 합니다. 모든 존재자가 서로 얽혀 서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이야기, 인간만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 ‘함께 만들고, 함께 되어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퍼져 나가야만 위기를 안고 살아갈 수 있고, 희망은 거기에 있습니다.

서구 휴머니즘은 인간을 지구 상의 유일한 ‘예외적 존재’로 이해하면서 인간 이외의 것들과 전적으로 분리된 주체로 이해해왔습니다. 포스트휴먼 관점은 인간이 비인간 존재자들과 얽혀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직시하고, 그를 통해 인간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김애령 교수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전반에 걸쳐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포스트휴먼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브라이도티 모두가 ‘인간중심 AI’를 외치고 있지만, 그 ‘인간’이 무엇인지 진지한 논의 없이는 공허한 슬로건일 뿐입니다. 포스트휴먼 논의는 그 공허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인간중심’이라 말하려면, 그 ‘인간’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더 이상 보편적 인격이 아니라, 차이를 가진 다수의 존재들이죠.

한강의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찾았습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을 다시 사유하는 것이 포스트휴먼 시대 인문학의 과제입니다. 인문학은 AI의 발견을 ‘적용’하는 주변장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을 제공하는 본론입니다. ‘이미 다 끝났다’는 냉소는 거짓입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른 채 매 순간 만들어지고 있어요. 구글랩이 우리 학과에 와서 애걸합니다. “단어를, 이미지를, 아이디어를, 소리를 주세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제 출판사도 제 책을 넘겼습니다. 우리는 우리 지식에 가치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훈련해 포스트휴먼의 미래를 꿈꿔야 합니다. 우리는 상상의 엔지니어입니다. 우리는 함께이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돌보며, 행성적 차원의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포스트휴먼이 되기는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세계가 되어가는 길’입니다.

김애령 인공지능은 아마도 우리에게 중요한 반려가 될 것입니다. 막연한 불안이나 막연한 기대는 모두 좋은 태도가 아닐 것 같습니다. 글 읽기와 쓰기, 사유하기가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 자명한데, 아무 준비 없이 대응하는 것은 게으른 태도입니다. 특히 대학 교육에 가져올 변화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본적일 것이고, 우리가 그 영향을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해야 할지 깊이 논의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포스트휴먼 철학은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변화를 뒤따라가며 대응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만들고 천착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브라이도티 선생님이 김옥길 강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대격변 이후의 세계를 설명할 언어를 창출하고 윤리적 토대를 상상하는 일이 인문학의 과제로 남아있어요. 포스트휴먼 철학은 첨단기술의 공학적 접근이 빠뜨리는 주제들, 즉 인프라, 에너지, 데이터 등을 둘러싼 환경의 다양한 의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지금 가장 급박한 토론을 이끌기 위해, 장밋빛 개발 논리에 포스트휴먼 철학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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