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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그랜드마더타워 — 토우 #18-01
약 253×58.5×88.6cm
재제작된 공업용 접시 건조대에 실감기, 실, 철에 도색, 바퀴 / 2018
룩셈부르크 무담 미술관 소장(발로아즈 그룹 2018년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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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서사에서
공동체적 풍경으로 확장
故 강서경 교수
조형예술대학 동양화전공
지난 4월 27일, 우리는 한국 현대미술계의 빛나는 별 강서경 작가를 영원히 떠나보냈다. 항암치료 중에도 끝까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는 작가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강서경은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믿었다. 그의 작품들이 보여준 ‘불안하지만 쓰러지지 않는’ 균형의 미학은, 이제 우리가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사진: 이재안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접착제 없이 오직 실의 마찰로 최소한의 접점을 유지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그랜드마더타워 (Grandmother Tower)’. 강함과 약함, 육중함과 가녀림,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면서도 절제된 규칙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그랜드마더타워는 우리 삶의 모습을 닮았다. 서로에게 의존하며 약점을 보완하고 지탱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불안한 아름다움: 그랜드마더타워의 탄생
비틀거리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강서경 작가의 ‘그랜드마더타워(Grandmother Tower)’ 연작(2011-2023)은 이처럼 아슬아슬한 균형의 미학을 보여준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손녀를 만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버려진 공업용 접시 건조대 같은 사물들을 색실로 감아 서로의 마찰에 의지하여 지탱하게 만든 구조물이다. 할머니에 대한 따스한 기억과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최소한의 균형을 잡는 그 불안한 아름다움은 보는 이에게 어떤 보편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몸을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도 저를 보시려고 벽에 몸을 기대고 비틀거리면서 일어나시려는 모습이 비단 슬픈 것만이 아니라, 저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접착제 없이, 오직 실의 마찰로만 최소한의 접점을 유지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이 작품은 2018년 스위스 아트 바젤 발로아즈 예술상 수상과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초대로 강서경을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영국 유학 중 할머니의 위중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던 작가는, 병상에서도 고운 원피스를 차려 입고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의 모습에서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강함과 약함, 육중함과 가녀림,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면서도 절제된 규칙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그랜드마더타워는 우리 삶의 모습을 닮았다. 서로에게 의존하며 약점을 보완하고 지탱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강서경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1. | 그랜드마더타워 #01 210×80×80cm 발견된, 재제작된 공업용 접시 건조대에 실감기 / 2011-2013 |
2. | 두꺼운 모라 120 × 120 #02 120×120×8cm |
3. | 검은 자리 꾀꼬리 설치 전경 |
사각형의 세계: 정(井), 자리, 모라를 통한 개인의 영역 탐구
“너무 직접적인 것들은 이미 도처에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좋아하는 추상성의 형태를 띤, 그렇지만 아주 아름다운 무언가를 지향하면서 작업하고 싶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강서경은 전통에 대한 깊은 탐구를 바탕으로 평면 회화를 시공간적 차원으로 확장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를 재정의해왔다. 그랜드마더타워에 이어 그의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는 조선시대 전통 악보 체계인 ‘정간보(井間譜)’에서 영감을 받은 정 井(Jeong) 연작(2014-2023), 조선시대 궁중무용 ‘춘앵무’의 화문석에서 영감을 받은 자리(Mat) 연작(2017-2024), 그리고 회화 언어의 기본 단위로 설정한 모라(Mora) 연작(2015-2024)이 있다.
이 연작들은 2018년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의 첫 미국 개인전 ‘검은 자리 꾀꼬리(Black Mat Oriole)’를 비롯해 2016년 광주 비엔날레, 2018년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등 글로벌 무대에서 선보이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국립국악원 아카이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춘앵무 무보는 자리와 마찬가지로 사각 틀의 제한된 공간이지만 개인의 움직임과 서사, 음악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다가왔다. 언어학에서 음절보다 짧은 단위를 의미하는 ‘모라’는 강서경의 작업에서 시간을 담고 서사를 쌓아 올리는 회화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이 작업들은 개인의 안전한 상태, 사회와 맺는 관계, 자리와 공간에 대한 명징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캔버스라는 사각 틀, 정간보의 그리드, 화문석의 제한된 공간은 모두 개인이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영역에 대한 강서경의 섬세한 고찰을 담고 있다.
강서경의 작업은 개인적인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곧 사회적 풍경으로 확장되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쓰러질 듯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내는 존재들, 그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움직임은 작가가 끊임없이 탐구해온 ‘관계’와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심스럽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
모라 55×68 — 검정 #01
68×55×4cm
한지, 캔버스, 먹, 과슈 / 2014-2016
함께 날아오르는 꾀꼬리들: 공동체적 풍경으로의 확장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 삼춘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를 승화시라 하든고.”
19세기 여창가곡 ‘이수대엽’의 <버들은>에서 영감을 받은 강서경의 작업은 점차 개인적 서사에서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적 풍경으로 확장되었다.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버들 북 꾀꼬리(Willow Drum Oriole)’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관계 맺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한데 녹여낸 거대하고도 섬세한 풍경이었다.
늦은 출산과 암투병이라는 인생의 고비를 지나며, 작가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관계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풍경(眞景)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
“더불어 함께하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전시장에서 수천, 수만의 꾀꼬리가 자연 속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어요. 전시 제목에 쓰인 ‘꾀꼬리’란 곧 ‘인간’을 의미하죠. 수많은 사람이 제가 만든 풍경 안에서 공존하길 바랐습니다.”
과거 ‘검은 자리 꾀꼬리(2018)’ 전시가 한 개인의 안전한 상태와 영역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버들 북 꾀꼬리(2023)’ 전시는 수많은 꾀꼬리들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공존하는 장으로 확장되었다.
공간에 그리는 새로운 산수화
2023 리움 전시에서는 ‘산(Mountain)’ 연작(2020-2025)을 선보이며 화선지가 아닌 공간에 그리는 산수화 작가로의 새로운 실험을 이어갔다. 학생 시절부터 매료되었던 인왕제색도 등의 고산수화 풍경을 독특한 추상 언어로 재해석해, 사계절의 산을 통해 자연의 순환을 표현했다.
예전에는 거대한 추상의 덩어리로만 느껴졌던 산이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는 작가는, 160cm를 넘지 않는 높이로 산 연작을 구성해 관객이 보다 친밀하게 작품과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작가의 시선은 점점 더 확장되어, 삶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시간과 자연, 현재라는 순간에 주목한다. 2024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마치(March)’는 봄의 시작과 함께하는 시간성(time)의 개념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작가는 ‘정 井(Jeong)’과 ‘모라(Mora)’를 중심으로 신작 조각과 회화를 선보이며, 일상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비단, 실,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시각화했다.
2025년 미국 덴버 현대미술관(MCA Denver)에서 열린 ‘산 시간 얼굴(Mountain—Hour—Face)’에서는 산, 자연, 풍경이라는 주제와 인간이 공간 및 서로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전시를 선보였다. 강서경 특유의 공간 감각과 촘촘한 조형 언어로 구성된 작품들은 관람객이 하나의 풍경 안을 거니는 듯한 몰입적 체험을 제공했다. 유동하는 시간 속에서도 순간을 포착하고,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이루려는 작가의 꾸준한 실험과 사유가 한층 더 깊어진 자리였다.
19세기 여창가곡 ‘이수대엽’의 <버들은>에서 영감을 받은 강서경의 작업은 점차 개인적 서사에서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적 풍경으로 확장되었다. 늦은 출산과 암투병이라는 인생의 고비를 지나며, 작가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관계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풍경(眞景)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 “더불어 함께하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전시장에서 수천, 수만의 꾀꼬리가 자연 속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어요. 전시 제목에 쓰인 ‘꾀꼬리’란 곧 ‘인간’을 의미하죠. 수많은 사람이 제가 만든 풍경 안에서 공존하길 바랐습니다.”
5. | 버들 북 꾀꼬리 |
6. | 산 시간 얼굴 |
5. | 버들 북 꾀꼬리 |
6. | 산 시간 얼굴 |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우리들의 이야기
강서경의 작업은 개인적인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곧 사회적 풍경으로 확장되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쓰러질 듯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내는 존재들, 그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움직임은 작가가 끊임없이 탐구해온 ‘관계’와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심스럽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강서경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쉰다. 그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균형의 미학과 공존의 철학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진정한 풍경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조용히 손을 내밀고 있다. 그의 시선은 개인에서 공동체로, 그리고 자연과 시간이라는 더 큰 차원으로 확장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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