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
온전히 문학의 길로만 향해 있었던 마음,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일가를 이룬 평론가
작년 8월 새롭게 문을 연 학관 752호 가변형 능동학습강의실에 ‘김미현 교수 기념 강의실’ 현판이 부착됐다. 김미현 교수와 유족의 뜻으로 ‘학관리모델링 및 재건축기금’과 ‘김미현장학금’에 3억 원의 기부금이 전달됐다. 현판식에 모인 가족과 동료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깊은 슬픔에도 자그마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에 기부하고 싶다던 소망도,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도 조금이나마 이뤄줄 수 있어서다.
23년간 본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일가를 이룬 저명한 문학평론가 김미현 교수가 지난해 9월 말기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을 발견한 지 2년 1개월 만에 맞이한 빠른 이별은 많은 이들을 황망케 했다. 투병 중에도 열정적인 강의와 논문 지도를 이어갔기에 사람들은 김 교수가 암을 극복하고 다시 강단에 서게 될 거라고 막연히 믿었을 것이다.
“2024년 5월 15일, 가족들이 차마 해지하지 못한 고(故) 김미현 교수의 휴대전화에 하늘로 보낸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스승의날이 되니 교수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보고 싶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내색을 비춘 적은 없었지만 “잊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김미현 교수, 많은 제자와 동료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
김미현 교수는 23년간 단 한 번도 똑같은 강의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늘 강의에 진심이었다. “얼마나 똑똑하고 반짝반짝한 학생들이 들어오는데, 내가 허투루 강의하면 학생들이 다 알아.”라는 말로 이화에서 만난 제자들에 대한 자랑을 은근히 비치는 것은, 뭐든 ‘적당히’ 하지 못하고 ‘불태울 정도’로 열심히 하는 자신에 대한 변이었다. 늘 사력을 다해 읽고 쓰느라 명절에 모처럼 만난 가족들에게도 “1시간만 더”를 말하며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곤 했다. 항암치료 후 상황이 호전되었던 2022년 2학기에는 퇴원해 집에 머물며 온라인 수업과 논문 지도를 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나 수업 꼭 하고 싶어. 온라인 수업이니까 아픈 모습 안 보여 주고도 할 수 있어.”라며 목소리로 학생들을 만났다. 박사학위 논문 지도에는 더욱 마음을 애태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논문이 늦어지는 학생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투병 기간 집에서 생활과 수업 준비를 도왔던 가족들이 적당히 하라고 조언하면 “내가 키운 내 자식들인데 끝까지 마무리 해주고 싶어”라며 제자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중학생 때부터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아오고 책을 좋아했던 김미현 교수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꿈을 한 번에 한 걸음씩만 열어 보였다. 끝까지 파고들어서 끝을 볼 작정이었지만 걱정하는 가족들을 염려했던 것이다. 대학생 시절 가족들은 안정된 미래를 위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도록 교직 이수를 권했고, 김미현 교수가 딱히 부정한 것도 아니었기에 교직 이수를 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훗날 모교 교수가 되고 나서야 사실은 교직이수를 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실제로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졸업 후 대형 은행사 홍보실에 취직하기도 했지만 첫 월급날이 채 오기도 전에 자신과 맞지 않다며 사직했다. 그의 마음은 온전히 문학의 길로만 향해 있었다.
열정과 노력에 비례할 만큼 문학평론가로서 크게 인정을 받았다. 1995년 ‘유산과 붙임의 발생학 – 신경숙의 「깊은 슬픔」론’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 남성 중심 문단과 문학사 변방에 머물렀던 여성문학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1996년에 발행한 「한국여성소설과 페미니즘」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으며, 2002년에 발간한 「여성문학을 넘어서」에서는 “피해자 페미니즘, 전투적 페미니즘에서 벗어나 여성의 힘과 다름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파워 페미니즘으로 가자”고 주장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8년 발간한 「젠더 프리즘」에서는 남성문학과 대립되는 문학, 불행과 상처만을 강조하는 여성문학으로 오해되기 쉬운 페미니즘 문학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한국 현대문학을 재해석한 공로로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2020년에 발간한 유작 「그림자의 빛」에서는 돌봄과 자기서사, 포스트휴먼과 테크노페미니즘, 모성트러블과 모성의 확장 등 21세기 주요 개념을 바탕으로 2000년대 소설을 조망했다.
작년 12월, 김미현 교수의 서재에 제자들이 모여 각자 필요한 책을 나누었다. 모두가 함께 추억에 젖는 시간이었다. 23년간 학생들의 성적표와 출석표, 과제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져 있었고, 스승의날에 받은 카드와 선물도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잊히고 싶지 않다”는 소망은 이루어질 것이다. 아낌없이 사랑했던 제자들이 그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기에. 그의 소망의 완결된 문장은 “내 인생을 바꿔준 스승을 이화에서 만난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 나를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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