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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람을 살리는 일’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기독교학 92졸)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피해자도 피해자 나름이라 성매매 여성들은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대상이었기에, 그래서 적대자들의 끝없는 방해와 협박, 비난과 편견을 일상적으로 견뎌야 했기에, 칭찬과 인정이 찾아올 틈은 없었다. 나이 50이 다 된 후 ‘미래를 이끌어 갈 여성지도자상’(2017), ‘길원옥 여성평화상’(2018), ‘아쇼카 한국 펠로우’(2019), ‘여성아동인권상’(2020), ‘포스코청암상’(2022)과 같은 큰 상을 연이어 받고 나니,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이렇게 인정받는 날도 오는구나”라는 겸연쩍은 기분을 느낀다.

업소 중심의 성매매가 디지털을 매개로 한 성매매와 성착취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다. PC방은 성매매의 온상이 됐고, 성매매에 유입되는 여성들의 나이도 점점 어려졌다. 가정과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까지도 미끼에 걸려든다. SNS와 사진, 영상 등 디지털 매체의 발달은 평범한 아이들에게까지 성착취의 그늘이 닿게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기독교학 92졸)는 NGO와 정부의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최초로 공식적인 기지촌 실태조사를 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이 처한 믿기지 않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사가 됐다. ‘성매매방지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로 구성)’ 제정(2004) 과정에 참여했으며,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이 10대 때 성매매로 유인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어린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설립(2012)했다.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들을 범법자로 간주하는 법제도 하에서는 어떠한 노력도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2020)의 선봉에 섰다. 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하루아침에 인식이 개선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임을 외치고 다닌다. 

여성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던 운명 

조진경 대표가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신학대학원생이었던 1992년, 미군 위안부 윤금희 씨의 끔찍하고 처참한 죽음을 접하게 되면서였다. 미군 기지촌에서 믿을 수 없는 최악의 범죄가 저질러졌음에도 이 죽음은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학창 시절부터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여성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이 여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가 발생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간사로 일하던 중 필리핀 수녀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이태원 클럽에 위장 취업한 15세 필리핀 소녀가 성폭력을 당했는데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아동·청소년이라서, 성폭력상담소는 외국인이라서 지원이 어렵다고 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데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근본적으로 여성을 속이고 착취함으로써 가능해지는 성매매 산업의 거대한 구조와 다양하게 얽혀있는 유착관계가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지촌 실태조사 공동연구를 위해 필리핀 연구자를 초청하는 데 온갖 서류 준비와 허가 절차로 6개월이 걸렸는데, 가수를 꿈꾸는 순진한 15세 필리핀 소녀가 입국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주였다. 명백한 성폭력 사건이 경찰 수사 결과 화간으로 처리됐다. 이 모든 것은 공권력의 묵인 또는 조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느꼈던 분노는 그를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성매매피해자 자활지원을 위한 ‘다시함께센터’로 이끌었다.

 아무도 관심 없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 

“당시에 아주 낮은 차원의 성매매 여성 보호 운동이 있었어요. 맨발로 도망쳐 온 여성들이나 더 이상 성매매를 할 수 없게 된 나이 들고 병든 여성들,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성매매 산업으로부터 폐기처분된 여성들을 숨겨주고 입히고 재우고 먹여주고, 또 너무 불쌍하니까 부둥켜안고 같이 울어주고요. 그 운동도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귀한 일이었지만, 저는 그게 성에 안 찼어요. 운다고 변하는 게 없잖아요. 당시 저는 젊었고 여성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하는 세상에 분노하고 있었거든요.” 급하게 도망쳐 온 터라 제대로 의복을 갖춘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옷을 사서 입히는 비용부터 숙식 지원까지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지원이 필요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법이었다. 당시의 ‘윤락행위등방지법’에서 윤락여성은 방지해야 할 대상 즉 범법자였기에 보호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개정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면서는 남성 중심의 사회 전반에 흐르는 암묵적 반대를 등에 업고 업주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공갈과 협박을 일삼았다. 3년 동안 집에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 바쁘고 피폐해졌다. 공포스러운 시간도 견뎌야만 했다. “지나고 보니 태풍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것 같아요. 성매매 여성들의 소재를 감춰야 하기 때문에 이름을 드러내고 이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해요.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운동의 스피커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제가 알려지게 된 것이었지요.” 성매매 여성을 왜 보호해야 하느냐고 공격하는 적대자들이 하도 많아, 논리 싸움부터 시작하는 것은 지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더 이상 견딜 힘이 남아있지 않을 즈음 동생이 목회하고 있는 캐나다로 건너갔다. 그사이 업소 중심의 성매매가 디지털을 매개로 한 성매매와 성착취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다. PC방은 성매매의 온상이 됐고, 성매매에 유입되는 여성들의 나이도 점점 어려졌다. 가정과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까지도 미끼에 걸려든다. SNS와 사진, 영상 등 디지털 매체의 발달은 평범한 아이들에게까지 성착취의 그늘이 닿게 했다. 심각한 위험에 놓인 아동·청소년들을 위해서 누군가 빨리 나서야 했다. 다시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희망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이는 국내 최초의 10대 여성들을 위한 ‘십대여성인권센터’의 문을 열게 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십대/여성/사이버 성착취 피해지원과 성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로 아동·청소년의 성착취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다. 설립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국내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그만큼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아직 크지 않다는 반증이다. 


센터 1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과 부모의 심리치료 작품을 공개하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전시회를 2023년 12월,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개최했다. 

피해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 운동에 뛰어들어 

아동·청소년을 꾀기 위한 수법은 다양하지만, 마음과 물질의 보상을 통해 심리를 지배하는 그루밍이 공통된 속성이다. 철저하게 불평등한 권력관계 내에서 아이들은 나쁜 어른에게 완전히 종속되고 마는 피해자이다. 그러나 역시 법은 그렇지 않았다. 성매매에 가담한 아동·청소년 역시 범법자로 규정되어 있기에 신고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또다시 조진경 대표는 법개정 운동에 뛰어들어 성매매에 가담한 아동·청소년을 ‘대상’ 아동·청소년이 아닌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보고 처벌하지 않도록 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2020)를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전국에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17개가 생겨나는 성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인 ‘n번방’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고, 디지털 성폭력을 엄하게 처벌하는 양형기준을 만든 n번방 방지법(2020), 온라인그루밍 처벌법(2021),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위장수사 법안(2021) 등이 통과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속도는 더디다. 여전히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을 범죄 가담자, 혹은 손쉽게 돈을 벌려는 불량한 아이들로 보는 사회통념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동의했다는 전제하에 비난의 시선을 내포하는 ‘성매매’ 대신 ‘성착취’로 용어를 변경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그럴듯함을 추구하는 삶보다는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저에게는 그 가치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를 하든, 교육을 하든, 경제인이 되든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가치를 두는 이화인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럴듯함을 추구하는 삶보다는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 

1988년, 조진경 동창이 이화에 입학했을 당시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대학가에는 시위와 데모가 끝없이 이어졌고,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저는 촌년이라서 서울 지리도 몰라요.”라고 극구 만류했음에도 동기들은 재미있고 유쾌한 조진경을 과 대표로 뽑아주었다. 이화에서 여성 문제에 눈을 뜨게 됐고, 이후로 자신의 삶 전체를 가장 비참하고 자존을 잃은 여성들을 위해 바쳤다. 


이화의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마디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 질문이 가장 어려웠어요. 평생 사회에서 인정받을 거란 생각을 못 하고 살다가 최근에 여러 상을 받다 보니 이제야 제 삶도 제 일도 그럴듯해 보이게 되었나 봐요. 하지만 반대로 그럴듯한 삶을 추구해서 이 일을 했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오래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그럴듯함을 추구하는 삶보다는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제게는 그 가치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를 하든, 교육을 하든, 경제인이 되든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가치를 두는 이화인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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