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Unequal Structure
Distanciation
Discrimination
Features
Unequal Structure Distanciation Discrimination
불평등한 구조가
차별과 혐오의
감정을 불러온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이주희 교수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근래 젊은 세대에서는 ‘기분부전증’이나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언급하며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이 증가했다. 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무기력은 대개 차별하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되지만, 그것과의 정확한 연결 고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이 진보시킨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 것은 불평등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개인들은 끊임없이 재능을 갈고닦아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 사회학자 이주희 교수는 ‘구조’와 ‘감정’을 한 쌍으로 바라본다. 불평등한 구조가 가령 자기혐오나 죽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니, 구조를 파헤치며 감정을 살피자고 제안한다.
한 번 차별적 구조가 마련되면 바로 그런 구조를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시키는 조직 간의 ‘모방’과 차별받고 배제되는 사람조차 그러한 구조 안에서 생존 전략을 만들어가게 하는 ‘적응’ 기제가 동시 에 작동한다.
| Q ⸻ | 왜 차별받는 사람들의 ‘감정’에 주목해야 하나? |
차별은 단순한 차이나 거리감이 경계심, 편견, 적대감으로 비화해 합리적인 사유 없이 불이익을 주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 보통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을 때 차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지배적인 사고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차별이 지속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런 복합적이며 모순적인 감정이다. 지난해 출간한 책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주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차별받는 마음은 하나가 아니며, 저마다 다르다.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가 필요할 때 자학과 체념, 포기, 그리고 유사하게 차별받는 사람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압도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그 자체로 진실된 무엇이라 여길 수 있지만, 감정사회학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는 그런 감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많은 사회운동의 목표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지배적인 규범이나 규칙을 바꾸는 것이었다. 우리가 감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감정을 통해 차별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거시 구조의 전면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모든 종류의 집합행동에 연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 그들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잘못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과연 어떤 체계적인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차별 극복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
| Q ⸻ | 조직, 국가, 신념 체계를 통한 구조적 차별이란 무엇인지 설명 부탁한다. |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조직, 국가, 신념 체계는 서로 정교하게 얽혀 각각의 구조가 가진 차별적 특성을 서로 강화한다. 구성원의 절대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조직, 특히 직장은 차별이 발생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단위이다. 조직에서 늘 하던 대로 하면 기존의 차별적 관행이 그대로 유지되며, 특히 겉으로는 중립적이지만 특정 소수자 집단에 더 차별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간접차별은 결코 시정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조직 내부를 갈라친다면 기득권층이 자원을 독점하고 사회적 삶을 단순화하는 이득이 생겨난다. 한 번 차별적 구조가 마련되면 바로 그런 구조를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시키는 조직 간의 ‘모방’과 차별받고 배제되는 사람조차 그러한 구조 안에서 생존 전략을 만들어가게 하는 ‘적응’ 기제가 동시에 작동한다. 즉, 차별의 피해자 역시 존재하는 구조에 맞추어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면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행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도 국가가 시민운동 세력의 강력한 요구와 투쟁 없이 차별하는 구조에 직접 개입하여 시정하려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그것은 두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 엘리트의 다수가 기득권을 지닌 사회의 다수자 집단의 인적 특성을 반영한다. 예들 들어, 우리 고위 국가관료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다. 또한 시험을 잘 치르는 능력으로 발탁된 비장애인들이기에 능력주의적이며 성과주의적인 태도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마련된 경직된 관료제 구조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는 정책적 결단의 가능성을 크게 낮춘다. 기업의 이윤 없이는 투자도, 생산도, 고용도, 세금도 모두 없어지는 구조적 종속성으로 인해 국가는 사회적 소수자보다 기업의 이해를 보편적 이해로 간주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차별과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크게 제한되고 정체된다. 신념 체계는 차별받는 사람의 저항 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거시구조이다. 조직과 국가의 차별을 정당화하며 내면화하는 신념 체계가 바뀌기 어려운 이유는 이데올로기가 단지 단어나 언어에 의해 승인되거나 제재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이데올로기의 논변적 관행을 지지하거나 강화하는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행위와 실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신념 체계를 자아낸 물적, 사회적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런 변화는 정교하게 기획된 제도를 필요로 한다. 역설적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추동력은 바로 지금과는 다른 대안적 사회적 질서가 가능하다는 또 다른 신념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 |
| Q ⸻ | 능력주의는 어떤 오류와 함정을 가지고 있는가? |
개인적으로 능력주의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일단, 능력주의는 봉건시대의 혈연주의나 현대의 인맥보다는 훨씬 나은 선발 원칙이다. 그런데, 능력에 따른 선발과 배치라는 능력주의의 기본 원칙에는 그에 따른 보상이 얼마나 차이 나야 하는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가 차별을 유도하고 더 많은 불평등을 자아내게 된 데에는 능력주의에 대한 피상적 이해 하에 극단적으로 경쟁적인 개인주의가 확산된 탓이 크다. 능력주의와 지나친 보상 격차를 분리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바로 그 능력의 획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모, 재능, 환경 모두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를 합리화하는 ‘노력’이야말로 어쩌면 중산층 이상의 부모와 적절한 환경에서 주조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재능일 수 있다. 이런 운에 따른 격차는 최소화되는 것이 맞다. 이런 능력주의를 책에서 시험 서열주의라 다르게 명명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마치 시험이 모든 계층에게 열려있는 공평한 기회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런 시험이 특권적 지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통찰했다. 관료주의는 시험의 중요성을 더욱 확대시키고 교육과 관련된 자격증은 결국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진다. 시험은 교육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지위의 공급을 제한하려는 욕망에 기반하고 있으며, 교육 비용이 너무 많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가난한 사람의 희생 하에 경제적 지위와 자산이 승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특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능력주의라는 창이자 방패로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위가 용인됨을 뜻한다.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는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와 소득의 평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 |
한국은 사회 서비스의 지출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으며, 서비스 관리를 지나치게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가 복지 제공의 책임 있는 주체로 기능해야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양질의 공보육 서비스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고 성평등을 촉진할 수 있는, 함께 일하고 함께 가정을 돌보는 이중생계부양자-이중돌봄자 모델의 정착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 Q ⸻ | 혐오도 하나의 문화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 곳곳에 만연한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혐오는 보통 강자나 다수자가 약자와 소수자를 향해 행한다고 여겨지고, 또 그렇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더 복잡한 현상이다. 차별받는 사람이 체념하고 적응하는 이유 중에는 그러지 않고 대항할 경우 감당해야 할 불이익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 그럴 경우 이들 중 일부는 분노나 불안감을 차별적 구조를 만들어낸 권력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더 낮은 지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소수자 집단에 투사하여 그들이 받았던 상처와 모욕을 돌려주려고 한다. 이런 문제는 프랑스의 르펜이나 미국의 트럼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정치권과 결탁해 활용될 때 더 극대화된다. 그런데, 샬러츠빌 시위에서처럼 트럼프와 함께 전면에 등장한 미국 저학력 저소득 백인의 분노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라기보다는 무너져내린 생계를 책임지라는 절규에 가깝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와 극단적인 양극화 하에서 기존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 자신의 문제를 이민자나 난민에게 되돌리면서 혐오가 극대화된다. 우리의 경우, 극우 혐오정치가 인종적 배타성이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능력’이 없다고 잘못 여겨지는 집단에 대한 경멸과 폄훼로 발현된다는 점에서 서구와 차이가 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장애를 가진 것, 가난한 부모들 둔 것, 비정규직이 된 것, 나이 들어 생산성이 떨어진 것 모두 한결같이 개인의 무능력 때문이며, 따라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런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혐오를 활용하려는 정치가가 설 자리를 없애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극단적인 양극화를 제어할 수 있는 경제와 복지 패러다임의 전면적 변화가 필요하다. | |
| Q ⸻ | 가장 큰 사회 문제 중 하나인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 |
경제적 양극화는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사회의 혐오와 갈등을 악화시킨다는 면에서 극복해야 할 중대한 과제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중화학공업의 재벌 대기업에 치중된 성장으로 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경제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독과점 체제와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보복을 제어하기 위한 법적 조치와 실효성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또한, 원·하청 관계뿐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서 노동자가 수수료, 알선료, 소개료 등을 과다 부담하는 다단계구조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확산하고 빈곤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 만연한 기업 간 중층적 위계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모범을 정부부터 보여야 한다. 이 문제의 근간에는 수익성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체제가 놓여 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 노동의 유연화와 그에 따른 불안정 고용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디지털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제어되지 않는 자본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더욱 빠르게 대두되고 있다. 기업의 ‘금융화’는 단기적인 재무제표상의 성과만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연구개발과 숙련에 대한 저투자를 유발한다. 경제적 양극화의 해소를 위해서는 노동과 복지 차원에서의 제도 개선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 강화를 위한 사용자 개념 확대,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근로자성 판단기준 완화,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법 도입 등 변화하는 고용형태를 반영한 노동법의 수정이 필요하다. 또한 탄소세와 로봇세와 같은 새로운 세원 발굴을 통해 복지국가의 크기 자체를 키워야 한다. 기본소득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급여 지원의 점진적 확대는 불평등 완화와 내수 확대를 통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기준에 맞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제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전 세계가 성, 인종 등 실존적 불평등과 관련된 대대적인 진전을 이룬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뒤처져 있었다. | |
| Q ⸻ |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관심사항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
4차 산업혁명의 전개와 함께 고용형태의 다변화 및 형해화, 고용에 기초한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한계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보험을 통한 복지지출의 비중이 큰 반면,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 다수가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소득비례형 사회보험의 경우 공공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 및 소비진작 효과가 미미한 한편, 기존 사회보험의 수혜자를 늘려가는 방식으로는 사각지대의 노동 빈곤층을 모두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이 문제를 기본소득과 기본 서비스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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